한국과 핀란드 대학을 경험한 젊은이로서 불편한 마음 조각들

1

채용할 때 대학 간판이 좋은 heuristic이 되는 시절은 간 것 같다. 물론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시스템의 관성이 너무 큰 경우는 어쩔 수 없이 현 궤도 유지겠지만... 대학 입장에서는 졸업장의 가치를 올려주기 위해 나름 열심히 노력한 것일텐데, 결국 너무 잘하려하다보니 일을 그릇친 것이 아닌가한다. 일례로 내가 핀란드에서 만난 가장 brilliant 사람들 중 상당수가 대학을 가지 않았거나 (뉘앙스 중요.), 대학을 발을 걸쳐놓는 수준으로 다녔다.

2

대학 교육의 가치를 물으려면, 이력서든 어디든 대학이름을 표기할 수 없다는 가정을 해보면 되지 않을까? "간판을 내세울 수 없는" 조건하에도 그 대학 4년동안 다니겠다고 할 수 있겠는가?

3

대학 커리큘럼을 구성하는 것과 게임을 디자인하는 것은 매우 흡사하다. "선형적으로 정답(들)을 제공하는 Story telling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흥미로운 문제들의 집합을 제공하는 Story machine으로 갈 것인가"는 두 경우 모두 핵심적인 고민인데, 일반적인 대학은 Story telling으로 간다. Storytelling 구조상 스토리(교육 컨텐츠+정해진 형식)를 제공받는 사람은 수동적을 기능할 수밖에 없다. 명색이 대학이라면 Story machine이 되어야하는데 (예를 들어 스타/마인크래프트, 심즈) 에고... 아쉽고 아쉽다.

4

아무리 좋은 스토리라도 개인 성향에 따라 이탈자가 생기기 마련인데 이들을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며" 안심시켜주고 "너에게 맞는 방식을 찾도록 응원해주겠노라"라는 안전망이 부실한듯. 괜히 나서서 도와주는 것은 오히려 민폐.

5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를 잘 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가? 스스로 전략짜고 종족 번성 능력이 있는 것 아닐까? 그리고 스타를 튜토리얼로 배운 기억은 없다. (반은 농담.)

6

일반적인 대학의 형색은 마치 닌텐도 게임이 하드코어 게이머들에게 재미가 없어지는 것과 유사하다. "한명도 놓치지 않고 끝까지 손 잡아주겠네"라는 느낌의 튜토리얼은 스스로 탐색하고 발견하는 재미를 그대로 뭉개버려주신다.

7

개미들이 먹이를 찾는 알고리듬(ACO)에서 배우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 개미들이 먹이를 찾을 때는 탐색exploration과 집중exploitation이 동시에 교차하면서 반복된다. 먼저 먹이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랜덤하게 탐색한다. 그와 동시에 페로몬을 통해 탐색된 공간의 위치와 질에 관한 피드백을 남긴다. "어? 이쪽 방향이 뭔가 심상치 않은데?"라는 피드백이 나오기 시작하는 쪽으로 탐색 방향이 "진화"한다. 결국 먹이를 찾게 되었을때, 먹이까지 도달하는 경로마저 랜덤한 탐색에 의해 최적화된다. 이 방식은 어찌보면 매우 멋없고 단순하다. 그리고 탐색의 비용과 실패율도 높을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local maximum에 정착되지 않고 (정의된 영역내에서) global maximum을 찾게 된다.

8

  • 위 과정에서 개체들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중앙사령탑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자.초반에 눈 감고 믿는 leap of faith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 대학 혹은 보통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트랙들이 온전한 선택지feasibility space로 생각하지 말것. 선택지는 훨씬 넓다. 일반적인 트랙은 local maximum일뿐.

  • 탐색하고 탐색하자. 탐색의 효과를 높이기위해 매번 탐색시 최대한의 정보를 얻고자 철저히 노력할 것. "마케터로 일해보니 잘 안맞네"라는 생각이 든다면,"다음번부터는 마케팅 자리에 지원안해야지"정도로는 부족하다. 도대체 어떤 점때문에 마케터로 일하기 싫은지에 대한 모델을 세우고, 다음번 탐색시 나오는 정보들을 통해 모델이 적절한지 확인한다. 모델이 어느정도 옳다고 생각이 들면, 이름이나 분야와 관계없이 본질적으로 비슷한 점들을 가진 옵션들을 탐색하지 않는다.

9

비용이 아니고 기회비용이다: 최고 수준의 교육 서비스들이 오픈강좌를 통해 공유되는 시대이다. 미안하지만 대부분의 대학 강의의 기회비용은 한없이 높아지고 있다. 양질의 대학교육이 공공서비스가 되어가는 판이다. "20년후에도 자녀를 똑같은 대학의 똑같은 강의를 듣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예스 못하면, 다른 방법workaround를 찾아야한다. 자퇴는 신중히 고려하되, 휴학에는 후해지자.

dh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있는 곳이 제 고향입니다. 세상에 유용한 것을 만드는 것을 업으로 평생을 살고자 합니다.

comments powered by Disq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