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때 나를 괴롭혔던 일곱 가지 고민들
오늘은 1월 12일 핀란드에 온지 딱 1년 되는 날이다. 미국에서 핀란드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가 20살 때 누군가 말해주었으면 좋았을 것들'을 정리해보았다. 모두 큰 질문들인데, 나만의 해답을 공유해본다. 물론 살면서 검증해나가고 있는 가설들이다.
결정은 어떻게 하는가?
사안들의 중요도는 멱함수 분포를 따른다. 살면서 직면하는 95% 문제들에 대한 결정은 '무엇을 결정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 경우 어느 쪽이든 신속히 결단하는 것만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결정에 있어서, 목적은 문제의 제거이지,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 여기서 임의적인 숫자 95%란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이 1) 크고, 2) 일시적인 속성을 지니는 메타포이다. 예를 들어, 나에게 있어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는 결정의 대상이 아니다. 어느쪽이든 첫째로 마음가는대로 결단하고, 바보스럽게 충실히 유지한다.
나머지 5%만이 결정의 대상이다. 당연하지만, 5%는 삶에서 미치는 영향이 1) 크고, 2) 장기간 지속되는 것들이다. 한마디로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이다. 95% 문제를 신속한 결단으로 제거한다면, 5%에 깊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이 중, 1%는 정말 중요한 문제들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이것들 대부분은 적어도 본인이 느끼기에 49:51의 문제여서 쉽게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부터는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겠다. 나의 경우는, 오직 조목조목 장단점을 분석한 결과만을 가지고 결정을 하기에는 마음이 석연치 않다. 어차피 불완전한 정보로 승부하는 결정이기에, 나는 마음이 향하는 쪽을 선택한다. 물론 잘못 결정할까 두렵기에 한 두번 꼼꼼히 따져보고 머릿 속에 입력한다. 그리고 머리의 조언을 품고 마음에게 묻는다, 어느쪽이냐고.
영어는 왜 필요한가?
Eucalyptus Systems CEO인 Marten Mickos는 이런 말을 했다. "You don't have to be in Silicon Valley, but Silicon Valley should always be in you.". 일반화하자면, 최정상급의 사례 그리고 최신 정보와는 항상 '연결'되어 있어야한다는 말이다. 언어의 일반적인 정의를 '소통의 수단'이라고 한다면, 영어의 정의는 '일류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다. 물도 원천과 가까울수록 깨끗하다. 번역이라는 톨게이트마다 통행료 내가면서 가기에는 돈 낭비, 시간 낭비가 심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섬세한 맥락을 잡기가 어려워 정보를 왜곡해서 해석할 위험이 있다.
영어 사용인구 대략 10억명 중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영문으로 글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현재 정세에서는 최고급 정보의 생산자들의 중심이다. 이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바를 직접 접한다는 것은 동급으로 가는 길이다. 지구라는 행성을 놓고, 각 분야의 선두주자들의 생각과 행동과 닿으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자신감이 생길지언정 자만하지는 않게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영어는 독해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한국땅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라도, 영문 독해에 힘을 써야한다. 몸은 안 떠나도, 마음으로는 세계 정상들에게 배우고 그들과 경쟁한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무엇인가?
먼저, 진정한 글로벌 시장이 존재하는가? 글쎄다. 앱스토어마저도 국가별로 나뉘어지지 않나. 일상에서 사용하는 글로벌도 결국 '탈한국'의 치환자가 아닌가 한다. 따져보면 큰 로컬과 작은 로컬로 보는 관점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세상이라는 것도 복수 명사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세상에는 크고 작은 많은 세상들이 있다. 작은 세상이라면 나와 내 가족일 수도 있고, 큰 세상이라면 한 국가 혹은 한 문화권이 될 수 있겠다. 무엇을 하든 어떠한 임팩트가 있을텐데, 임팩트의 범위, 크기, 질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통해서 인생의 목표를 정해보는 것도 좋겠다.
착각하지말자. 말장난이 아니다. 무언가 제대로 실행하려면 지나칠 정도로 구체화하는 과정이 필수라는 것이다. 실행하는데 발목 잡는 것은 이상적인 생각이 아니라 추상적이기만 생각이다. 이상은 오직 전반적인 방향으로서, 현실에서 '구체화'되면 되는 것이다. 고로 '세상을 바꾼다' 자체는 너무 추상적이어서,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지금보다 더 많이 모자라던 시절,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로 소모적인 논쟁을 했던 내가 떠오른다.
불확실한 내 삶은 어디로?
불확실해서 두려운 것이 아니다. 신념이 없어서 두려운 것이다. 신념은 정의는 삶의 공리인데, 평소에는 무조건 참으로 굳게 믿되 1년에 한번씩 의심해보는 놈이다. "지금이 어떤들, 언젠가 반드시 X가 이루어질 거야." 같은 미래지향적인 신념도 좋지만, 경험상 나에게는 "무슨 일이 생기든, 나의 가치는 X에 있어." 같은 항상성 중심의 사고가 잘 맞는다. 또한 자연의 이치를 관찰하면 불확실성이라는 키워드는 번번히 등장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니 친하게 지내도록 하자.
그렇다고 해서 불확실함을 마냥 친구같이 대하고,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도 문제다. 5%의 영역이라면, 성실히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해야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중요한 변수들을 측정하는 것이다. 측정의 실속있는 정의는 '불확실성의 감소'이지 '정확한 값을 구함'이 아니다. 예를 들어, 올 2013년 실업자 신세를 면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면, 먼저 구직 활동과 관련된 비용을 측정해보는 것이다. 내가 당장 취직할 수 있는 곳 중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보수(X) 그리고 구직활동을 하는 동안 매달 드는 생활비(Y), 1년에 가족들에게 핀잔들을 만한 명절, 행사의 수(Z) 등을 대략적인 범위로서 도출해본다. 이를 통해 현재 실업자로서 구직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진짜 얼마나 두려워할만한 일인지 알게 된다.
성격상 나에게 있어서 지나친 확실함은 무서울 정도로 지루한 단어이다. 그리고 흥미진진한 도전이라면, 정말 의미있는 문제라면 불확실하기 마련이다.
단기적 그리고 장기적 사고
5%의 영역이라면 단기, 장기라는 구분은 잊어야 한다. 그리고 질문 두 가지만 던진다. 1) "앞으로 10년동안 변하지 않을 것은 무엇인가?" 2) "앞으로 10년동안 크게 변화할 것은 무엇인가?". 실용적인 것을 배우려면, 과거 10년동안 유용했던 것이 아니라, 앞으로 10년동안 변하지 않을 것을 배운다. 기회를 잡으려면, 앞으로 10년동안 꾸준히 크게 변화할 것을 상대한다. 단순히 트렌드 읽는 것으로는 안되고, 나를 알고 크게 세상을 보는 안목을 길러야하는 것 같다. 이 부분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에게 기준은 7년이다. 나는 7이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일을 하더라도, 7년동안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하고. 사람을 사귈때에도, 7년 이상 교류할 사람을 만나고자 한다. 삶을 평가할 때에도 큰 성패는 7년마다 따져본다. 나이가 들수록 안 그래도 시간이 빨리가고, 평균 수명은 길어지는데, 1년단위로 하루살이 마냥 선택하고 살다가는 뒤통수 맞는다.
독학이라는 복리 이자
소위 학원이라는 것은 죄수의 딜레마와 같아서, 단기적으로 매력적인 결정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학생의 지적능력 향상에 해가 된다. 문답식으로 소규모로 진행되는 과외라면 장기적인 교육 효과는 대체로 있을 것이다. 학원과 과외의 차이는 결국 듣는 것과 묻는 것의 비율에 있겠다. 대학 교육에서 본전을 뽑으려면, 강의는 잊고 혼자 혹은 친구와 독학해야한다. 대학은 연료 채우는 곳이라기보다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고장난 엔진 고치는 곳이다. 독학을 하다보면 모르는 것이 나오기 마련이고, 무엇보다 궁금한 것이 나온다. 강의에 가서는 질문한다. 교수도 좋아하고, 학생도 좋아한다. 뭣모르는 학생들만 진도 안 나간다며 화를 낸다.
현대 대학의 인센티브 구조가 연구와 강의간에 연구를 선택하게 되는 형태이기 때문에, 사실 교수 입장에서 학원처럼 강의에 집중하기 어렵다. 또한 내 생각으로는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교수를 매우 좁게 정의된 영역에서 과거, 최신 디테일을 꾀차고 있는 인간으로 가정하고 대해도 큰 무리가 없을까 한다. 먼저 그 영역을 정확히 파악하고, 교수와 스피커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관계한다. 대학 등록금 깎으려면, 질문으로 교수를 괴롭히고(?), 강의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공부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다. 독학 능력은 복리 이자처럼 향상되는 법이니,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똑똑하게 이기적으로 사는 방법
나는 이기적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내게 있어 '이기적'의 정의는 '나의 이상을 중심에 놓는다.'이다. 이타주의라는 것은 상당히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인데, '나를 넘어 타인을 이롭게 하겠다.'라는 자신의 이상에 대한 이기적인 추구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타주의는 이기주의에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하위 집합으로 봐야한다. 이기주의에 대립되는 개념은 무기주의 혹은 의존주의이다. 한마디로 나라는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고, 불특정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이다. 나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없었기에, 자신의 이상을 중심에 두려고 해도, 이상 자체가 파악이 안된다.
똑똑하게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바보처럼 이기적인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항상 '나만을 이롭게 한다.'대로 살면 바보이다. 인간의 행복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변수가 일과 인간 관계인데, 나만을 이롭게 하려고 하면 인간 관계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관계가 망하면, 삶이 흥할리 없다.
졸린 눈으로 런던에서 마무리 지음.